⬛백룸 - 리미널 스페이스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Kane Pixels의 영상 <The Backrooms>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미궁과 같은 알 수 없는 공간에 빠지게 된다는 괴담을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그리고 있습니다. 영상 속 백룸의 풍경은, 익숙한 요소와 익숙하지 않은 요소가 불균일하게 혼재되며 묘하게 불쾌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유형의 공간을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 라고 부릅니다.

리미널 스페이스란 한마디로 ‘경계의 공간’ - 익숙하던 세상과 전혀 알 수 없는 세상 사이의 공간을 말합니다. 그 너머의 세상을 전혀 알 수 없기에, 의미도 목적도 느끼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공간. 리미널 스페이스에서 주로 느끼는 감정은 모호함, 위화감, 방향상실, 불안, 공포, 허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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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 코로나펜데믹

텐트영화제는 10여년 전, 작가와 관객 사이의 경계를 넘어 함께 어울리며 작품을 나누고픈 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틀도 격식도 없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 어디든 텐트를 치고 작품을 상영했습니다. 작은 텐트 안에 관객분들과 오손도손 모여서 따뜻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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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나 재밌고 즐겁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힘들 때가 더 많았습니다. 더위, 추위, 규제, 사기꾼 등을 만나며 늘 다양한 어려움에 봉착하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빌런은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였습니다. 2021년 여름, 한강공원에서 열심히 준비했던 오프라인 텐트영화제가 취소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은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경계만 만든 것이 아니라 시대 전체를 갈라놓았습니다. 익숙한 세상과 알 수 없는 미래가 불균일하게 섞인 경계공간. 코로나 펜데믹을 힘겹게 지나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리미널 스페이스가 되어 있습니다.

🌐텐트 - 메타버스

저희는 코로나 펜데믹 이라는 리미널 스페이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메타버스로 왔습니다.

말 잔치 가득한 마케팅 용어로서의 ‘메타버스’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텐트를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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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에 텐트를 치고 작품을 상영하니,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인 사람들이 모닥불 곁에 모여 밤새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감독과 관객이 텐트안에 모여 서로의 작품을 보여주고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오프라인시절 보다도 더 깊고 진실한 이야기들이 이 곳에서 오고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2022년에도 메타버스 텐트영화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작품 - 큐레이션

텐트영화제는 더 많은 작품, 더 새로운 작품을 추구하기보다는 마치 미술 작품을 큐레이션 하듯, 하나의 맥락 안에서 다양한 관점을 나눌 수 있는 작품들을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단편작품이 갖고 있는 파인아트의 속성에 보다 주목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텐트영화제 공식 시작 전 VIP 관객분들께 3차례 도슨트 투어를 진행하였습니다.

18회 텐트영화제 상영작들을 아우르는 주제는, 우리 내면의 리미널 스페이스 입니다. 낯선 존재를 만나거나(남매의 집, 메이트, 육식콩나물) 몰랐던 진실을 알게되거나(죽음의 상인, 까마귀가 물어갔어) 익숙하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거나(빈 방, 도시, 먼지아이) 세계관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오목어, 아티스트-110) 우리 마음속에 리미널 스페이스가 생기곤 합니다.

리미널 스페이스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시간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요? 작품을 감상하며 만나게 되는 다양한 질문들과 이야깃거리들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